기쁨의 소망과 믿음

사진 설명 : Jonathan Charles

동 아프리카 메노나이트 교회들

“아프리카의 토속 종교에서, 신앙을 표현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알렘누 체콜(Alemnu Checole)이 세계 메노나이트 역사 시리즈 중 하나인 아프리카의 심장에 머무는 아나뱁티스트의 노래에서 사무엘 아세파(Samuel Asefa)의 도움을 받아 인용한 말이다. 체콜은 또한 “믿음과 실천은 하나의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하나의 부족에서 다른 부족으로 전달되면서 다양해졌다. 신앙의 표현은 루오, 마사이, 투르카나, 자나키 등의 다양한 토속어로 표현되고 이해되었다.”고도 말했다.

아프리카의 크리스천들은 기독교에서 ‘영생에 대한 희망’, ‘죄 사함에 대한 확신’, ‘하나님과 인류의 평화와 화해를 향한 확신’과 ‘그 확신을 확인하면서 오는 마음의 평안’ 등을 발견했다. 자기들이 발견한 이런 사실들 덕분에 그들은 기독교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피는 그들을 전 세계적인 믿음의 공동체 안에 하나되게 했고 그들이 새로운 언약을 맺게 했다.

엘람(Elam)과 엘리자베스 스타우퍼(Elizabeth Stauffer) 그리고 존(John)과 루스 모세만(Ruth Moseman)은 1930년대 탄자니아(당시에는 탕가니카)에 지역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들어간 최초의 메노나이트 선교사들이었다. 당시 청년이었고 근처에 살고 있던 크리스천 제데키야 키사레가 그들이 주일예배에서 설교를 할 때 통역을 맡았다.

선교 본부는 부족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부키로바(Bukiroba), 무강고(Mugango), 부망기(Bumangi) 그리고 니바시(Nyabasi)에 설립되었다. 사진 설명 : Margaret Kisare

각 선교 지역에서는 복음이 전파되었고, 교회가 세워졌으며 학교와 병원, 그리고 소녀들을 위한 집이 세워졌다.

이런 움직임의 영향인지 1942년, 동 아프리카 지역에 부흥의 바람이 불었다. 이는 아프리카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더욱 커졌고 곧 아프리카 전 지역을 휩쓸었다. “아프리카 동부에서 일어난 이 부흥의 바람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매 순간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체콜(Checole)과 아세파(Asefa)가 말했다. “이 부흥의 물결이 외지에서 들어간 선교사들과 아프리카인들 사이의 화합을 불러왔고, 두 인종간에 동정과 이해를 불러왔다.”

동 아프리카의 나라들이 식민지 지배에서 독립한 것과 같은 이치로 교회 내의 지도자들도 점차 선교사들에서 아프리카의 상황에 대해 더욱 잘 아는 현지 사람들로 전환되었다.

1948년, 탄자니아의 메노나이트 선교사들은 원주민 주교, 목사, 장로 이렇게 세 가지 구조 위에 서는 메노나이트 교회를 짓기로 이야기를 했다.   

1950년, 15년 이상 평신도 사역자로 섬겨온 사람들이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들에게는 세례, 성찬, 결혼을 주관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다. 에제키엘 무간다(Ezekiel Muganda), 안드레아 마베바(Andrea Mabeba), 제데키야 키사레(Zedekiah Kisare) 그리고 나숀 카위라 니암복(Nashon Kawira Nyambok)이 이 때 목사 안수를 받은 네 사람이었다.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느낌, 아프리카 출신의 목사가 세워졌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과 감사가 복음 전파 사역을 크게 부흥시켰다.” 체콜(Checole)과 아세파(Asefa)의 말이다. 복음주의자들이 여러 장소로 이동하면서 맞닥뜨리는 많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교회는 변화의 결실을 맺었다.

1961년, 탄자니아가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 했을 때, 교회 지도자들은 국가주의적인 질문들과 싸워야 했다. 하지만 당시 교회 지도자들은 청년기 때부터 이미 책임감의 가치를 발견했고, 책임감을 청년기 때부터 심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탄자니칸 메노나이트 교회에서는 다니엘 마토카(Daniel Matoka)가 셰마야 마가티(Shemaya Magati)의 도움을 받아 청년 연합을 세웠다. 청년들은 교회를 청소하거나 헌금 위원이 되기도 했고, 주일학교 프로그램을 인도하기 위해 지원하고나 찬양 인도, 정원 가꾸기 등 많은 분야에서 헌신했다.

1964년, 탄자니아 메노나이트 교회는 루오 부족의 제데키야 키사레(Zedekiah Kisare)를 첫 번째 주교로 선출했다. 루오 부족과 또 다른 후보 에제키엘 무간다(Ezekiel Muganda)의 출신 부족인 반투 부족 사이에서 긴장감이 맴돌았다. 하지만 무간다는 이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기 보다는 평화를 추구했다. 키사레는 1967년 탄자니아가 사회주의 국가로 선언 되었을 때 다시 한 번 임명되었다.

케냐와 탄자니아는 정치적 차이에 따라 부족이 나누어졌다. 1942년, 오과다 오카치(Ogwada Okach)와 니카놀 다제(Nikanor Dhaje)는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케냐로 건너가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을 느꼈다. 그들은 탄자니아에서 케냐로 선교를 떠난 최초의 메노나이트 복음주의자들이었고, 예수의 증인이 되어 반데, 낭와예 등의 지역에 이미 생겨나고 있던 크리스천 그룹을 더욱 성장시켰다. 케냐의 메노나이트 교회들은 그 출발점부터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시작한 “풀뿌리 신앙”을 바탕으로 두고 있다. 믿음으로 나아가기 중 필립 E. 오케요(Philip E.Okeyo)의 말이다.

케냐가 독립국이 된 2년 후인 1965년, 메노나이트를 하나의 교단으로 인정해 달라는 신청서를 받았다. 하지만 그 신청서가 케냐는 1963년 독립국이 되었다. 1965년에 케냐 정부는 메노나이트를 교단 중 하나로 만들어 달라는 4번째 신청서를 받았다. 하지만 신청서가 받아들여진 후에도 키사레 주교가 케냐에 세워진 목사들과 스스로의 구조를 세우게 되는 1977년 까지 케냐 메노나이트 교회들은 여전히 탄자니아 교회들의 일부로 분류되었다.

1980년, 이스트레이 협력 센터(Eastleigh Fellowship Centre)가 나이로비에 세워졌다. 도서관, 교실, 운동공간이 있는 협력 센터는 “오늘날의 크리스천들과 다양한 종교들 사이에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여가공간을 제공했으며 저임금 가정의 학생들을 돕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체콜(Checole)과 아세파(Asefa)가 말했다. 케냐 메노나이트 교회들은 이슬람 단체와 갈등을 가지고 있지만 협력 센터를 통해 평화를 향한 좋은 관계를 시작할 수 있게 했다.

1978년, 우간다와 탄자니아 사이의 전쟁은 메노나이트의 무저항에 대한 신념을 시험했다. 어떤 교회는 전쟁을 하기 위해 나가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느데게(Christopher Ndege)같은 사람들은 재판에 회부되는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신앙 고백 위에 굳게 서 있었다.

이 시기에 크게 부흥한 탄자니아 교회는 헤제키아 N. 사리아(Hezekiah N. Saria)를 두 번째 교구 주교로 선출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지역간, 부족간의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교회 성장은 잠시 침체기에 들어갔고, 영적으로 영양실조의 시기였다.” 체콜(Checole)과 아세파(Asefa)의 말이다. 이후 새롭게 세워진 리더십은 “KMT에 화해와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케냐 교회 역시 성장통을 겪으며 “하나의 민족 그룹으로 시작했던 교회가 이제는 우간다 안에서만 해도 키쿠유(kikuyu), 루햐(Luhya), 미지켄다(Mijikenda), 난디(Nandi), 마아사이(Maasai), 소말리(Somali) 그 외 다른 수 많은 부족들 안에서도 세워졌다.” 믿음으로 나아가기에서 오케요(Okeyo)가 말했다.

“복음은 모든 문화에 전파되었고, 그에 따라 모든 전통적 가치에 도전장을 던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역을 통해 아프리카의 수백만 크리스천들이 희망과 믿음의 기쁨 안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은 죽음을 이겼고, 승리는 이미 예정되어있다. 복음은 모두를 위한 기쁜 소식이다.” 체콜(Checole)과 아세파(Asefa)가 말했다.

 

당신은 알고 있는가?

케냐의 인구는 4천만명 이상이다.

케냐의 인구 중 80%가 크리스쳔, 7%가 무슬림, 13%가 아프리카 토속신앙이고 그 외에 적은 비율의 힌두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 신자들이 있다.

탄자니아의 인구는 5천만 이상이다.

70%이상의 탄자니아 사람들의 거주지는 시골이다.

 

아프리카의 메노나이트에 대해 좀 더 배워보자.

Anabaptist Songs in African Hearts, 3rd ed. Global Mennonite History Series 1. Lapp, John A. and C. Arnold Snyder, gen. eds. Kitchener, ON: Pandora Press, 2006.

Forward in Faith: History of the Kenya Mennonite Church, A Seventy-Year Journey, 1942–2012. Ojwang, Francis S. ed. Nairobi: Kenya Mennonite Church, 2015.

“Kanisa la Mennonite Tanzania.” Global Anabaptist Mennonite Encyclopedia Online. Stauffer, Elam W. and Mahlon M. Hess. 1987. Web. http://gameo.org/index.php?title=Kanisa_la_Mennonite_Tanzania&oldid=132736

“Kenya Mennonite Church.” Global Anabaptist Mennonite Encyclopedia Online. Hess, Mahlon M. 1987. Web. http://gameo.org/index.php?title=Kenya_Mennonite_Church&oldid=122536

케냐의 메노나이트 교회들
Brethren in Christ Church Kenya Conference
Members 출석 인원 4,900
Congregations 교회 수 25
Headquarters 총회 위치 Nakuru
Presiding officer 총회장 Samuel Muriithi (bishop)
Christian Believers Fellowship (Beachy Amish Church)
출석 인원 693
교회 수 16
총회 위치 Kisumu
총회장 Marlin Stoltzfus (senior bishop)
Christian Church International
출석 인원 19,640
교회 수 320
총회 위치 Madaraka, Thika, Central
총회장 Joseph Mburu Kamiri (bishop)
Church of God in Christ, Mennonite
출석 인원 139
교회 수 9
*Kenya Mennonite Church
출석 인원 11,800
교회 수 142
총회 위치 Nango
총회장 Philip E. Okeyo (bishop moderator)
탄자니아에 있는 메노나이트 교회들
*Kanisa la Mennonite Tanzania
출석 인원 65,456
교회 수 400
총회 위치 Musoma
총회장 Steven Watson Mang’ana (bishop)
* MWC의 멤버십 교회들.
출처: MWC 세계 요람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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