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건강이 교회에 영향을 미치는 순간

사진: 댄 딕(Dan Dyck), 홈 스트리트 메노나이트 교회, 위니펙, 매니토바, 캐나다

벤의 부모는 그들의 22살 된 아들이 정신 상담을 위해 병원을 가야 한다는 전화를 받고 어리둥절하고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벤은 평범한 아이였다. 밝고 창의적이었으며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이들 돌보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요즈음의 벤은 다른 사람들을 향해 날 선 비난을 던지고, 편집증 적인 증상으로 며칠씩 잠을 자지 못하는 등 스스로에게도 낯선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벤은 학업에 대한 부담에 대해 불평을 했고, 그의 성적은 지난 학기 내내 그를 힘들게 했다. 그는 비밀 프로젝트를 하느라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다.

벤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벤의 몸 양 쪽은 경찰이 붙들고 있었고, 사나운 눈빛과는 달리 패배감에 젖어 있었다.

부모님을 향해 자기를 체포하게 만들었다는 비난을 하며 쏘아보기도 했다. 자기 자녀가 이런 말을 입에 담았다는 사실에 벤의 부모는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작은 병원 응급실에 앉아있는 다른 환자들의 가족들을 의식하면서 스스로 진정시켰다. 벤은 조울증을 앓고 있었다.

 

조울증이란 무엇인가?

조울증에는 두 가지 증상이 있다. 조증과 울증이다. 조울증은 조증과 울증이 나타나는 모습에 따라 다양하게 유형이 나뉜다..

울증은 우울증, 흥미를 잃는 증상, 즐거운 일에도 기뻐하지 않고 쉽게 짜증을 내는 모습, 식욕과 체중의 급격한 변화, 불면증, 거식증, 존재가치에 대한 부정, 수치심, 집중력 장애, 죽음이나 자살에 대한 생각 등의 증상으로 확인 가능하다.

조증은 사람을 평소보다 과한 활동을 하게 만든다. 조증을 겪고 있는 사람은 잠도 거의 자지 않고 평소보다 많이 이야기를 한다. 생각에도 급격한 변화가 있으며 충동적이고 흥분된 행동을 하기도 힌다. 고통스러운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과도한 지출, 무분별한 성관계, 도박, 난폭운전 등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때로 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환청을 듣거나 환각을 보는 등의 증상으로 고통받기도 한다. 또는 기괴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그런 증상은 일상 생활을 살짝 방해하는 정도이기도 하고 입원을 해야 하는 정도가 되기도 한다.

교회의 대응

교회가 세상 안에서 긍휼의 빛이 되려고 할 때, 어떻게 하면 정신 건강을 잃고 있는 개인과 가족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교회 공동체는 그들의 고통을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 이는 교회 내에서 어떠한 신체적, 정신적 어떤 건강 상태의 사람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부족한 사람들을 돌보라고 이야기한다.(빌립보서 2:1-8, 야고보서 1:22-27, 요한 1서 3:16-18, 출애굽기 15:7-11, 마태복음 25:34-46) 노숙자 중 많은 수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 조울증으로 고통 받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정부의 지원 역시 표준 이하의 주거 환경이 가능한 정도이다. 때로 그 마저도 어려울 때도 있다. 이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인 것이다.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능률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으로 돌아가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자기에게 잘 맞는 일을 찾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교회가 이런 사람들의 자립을 도울 수 있을까?

캐나다 매니토바에 있는 메노나이트 교회 재단의 에덴 건강 케어 서비스는 합리적인 가격의 주거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 뿐 아니라 다양한 공동체에서 직업 서비스도 일관적으로 제공했고, 이제는 기본적인 수준을 넘어서 더 많은 케어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 밖의 추가적인 필요에 따라 새로운 케어를 공급하기도 한다.

크리스천 가치의 기초는 사랑, 용서, 회복, 수용, 그리고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가치들은 끊임없이 조울증 등의 정신 질환으로 괴로워하는 형제들에게 적용되고 있다.

넓은 의미로서 교회인 우리 개개인이 ‘이들을 도울 방법이 없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상상과 결정에 갇혀 하는 말에 불과한 것이다.

가치 있는 은사

만약 우리가 진지하게 교회를 하나의 지체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공동체를 위해 개별 구성원이 어떤 것을 제공할 수 있을 지 질문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고린도전서 12:22,24 개역개정).

종종 우리는 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교회의 짐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각자가 하나님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 이들 역시 열정, 극적인 표현, 약점에 대한 솔직함, 정신 건강 구조에 대한 경험 등의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있다.

소속감을 갖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참여하고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하나의 몸은 많은 지체들이 모여 하나가 되어야 만들어진다. 우리가 다양함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하나의 몸으로 더욱 단단하고 풍성해 질 것이다.

판단하지 마라

앞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조울증은 이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의 생각을 방해해서 충동적이고 과격하게 행동하도록 만든다. 교회 내에서, 우리는 원하지 않았던 행동이나 죄악의 행동에 대해 비상식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그런 행동을 저지른 사람에게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고 훈계한다. 하지만 조울증의 복잡성은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려는 그런 시도 자체에 대한 반발이나 의문을 부르기도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 없다면? 감정과 관계의 문제에서 신체적인 요소는 어떤 역할을 할까? 우리 뇌가 우리의 관계에 얼마나 영향을 줄까? 선택이나 관용에 관한 문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누군가 우리가 문제 의식을 느끼는 행동을 한다면 우리는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 사람의 행동을 참을 수 있을까?

규칙을 벗어난 행동은 자연적인 결과나 법적인 결과를 부르기도 한다. 우리 마음에 “판단하는 자들은 스스로 판단 받지 않기 위해 조심하라.”는 예수의 말을 깊이 새겨보자. 건강 관리 시스템, 사법 시스템, 고용주, 상점 안에서 우리가 다른 형제들과 함께 한 사람의 편에 서서 그를 지지할 수 있을까?

예배와 정신 건강

정신 건강 진단이 치명적인 것은 그것이 낙인효과를 부르기 때문이다. 사회와 교회는 가끔 두려움과 오해에서 소외의 이유를 찾기도 한다.

어떻게 말씀과 기도, 찬양과 설교가 신체적 질환 만큼 심각한 정신 질환에서 한 사람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정신 건강에 대한 문제를 대할 때 “그들”대신 “우리”를 사용하면 어떤 영향이 있을까?

우리가 정신 건강의 문제를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용기가 생길 때 우리는 교회를 구조 안에서 살지 못하는 이들에게 더 안전한 장소로 만들어 주게 된다.

어떤 일이 공공연하게 이야기 될 수 있다면 그에 따른 수치심은 줄어들 것이고 그 문제에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 또한 그 일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오는 공포도 줄어들 것이고 겁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는 것 역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많은 성경 본문이 낙심한 자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어떤 정신 건강 기관에서는 예배 중 사용할 다양한 자료를 소개한다.

극심한 피로를 예방하기

모두가 교회에 제공할 은사가 있지만 때로 어떤 이들은 더 많은 보살핌과 후원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작은 교회나 마을에서는 비슷한 사람들이 위기에 대처하거나 도움을 주게 된다. 그리고 이 상황이 반복될 때, 이들은 스스로의 노력에 탈진하게 된다.

이런 극심한 피로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들이 있다. 이 방법들이 교회 내에서 확립되면

결과적으로 서로에 대한 보살핌의 질을 향상시키고 케어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생활도 함께 향상시킬 수 있다.

첫째, 개인을 함께 돕기 위한 그룹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사람이 일정한 시간에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했을 때 다른 사람이 그 시간을 채울 수 있게 된다. 또한 사람들은 물질적인 후원이나 사회 적응을 돕는 일 또는 영적인 보살핌 등 각자가 맡을 수 있는 특별한 역할과 능력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둘째, 개인적인 경계를 정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토요일은 가족과 함께 보내기로 마음먹었다면 그 시간 동안 다른 사람을 보살피는 일은 하지 못한다고 확실하게 정해야 한다. 관계를 맺으면서 직접적으로 정확하게 경계를 정하는 것이 보살피는 사람과 보살핌을 받는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셋째, 스스로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이 한계는 때로는 시간적 한계(예: 한 주에 두 시간 이상을 할애할 수 없음), 도움을 줄 수 있는 영역(예: 음식은 줄 수 있지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자신이 없음), 스스로의 건강(예: 최근 자기가 우울증을 겪어 그동안과 다른 감정상태를 가지고 있음) 등이 될 수 있다.

교회는 많은 다양성, 개성, 능력,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교회는 우리가 함께 모여 우리의 공통적인 인류애를 탐험할 수 있는 곳이고 우리의 위대한 잠재성을 표현하면서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곳이다.

이는 세상이 때로는 도전을 주고 때로는 즐거움을 준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함께 나아가야 하는 우리의 여정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어가는 일을 기쁘게

받아들이자!

—조안 클라센(결혼과 가족 치유학 석사, 신학 석사)은 매니토바의 에덴 건강 케어 서비스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위니펙 지역 건강 당국에서 공동 보건 정신 건강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 글은 교회, 캐나다와 미국의 아나뱁티스트 편집자 모임을 위해 쓰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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